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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칼럼][임성은 원장의 혁신 이야기] (4)치료 거부권을 허(許)하라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보담당자 2023.07.24 1031

※ 7월 24일자 정책 혁신 관련 연구원 칼럼 기사입니다.


치료 거부권을 허(許)하라 [임성은 원장의 혁신 이야기] “삶이란 영원한 비존재(非存在) 상태의 일시적 중단이다”미국의 세포면역학 박사이자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에런 라이크는 저서 <건강의 배신>에서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을 제시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비극적 중단이라 여기면서, 이를 늦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아니면 좀 더 현실적으로 삶이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관찰하고 상호작용할 짧은 기회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에런 라이크가 지적한 ‘죽음을 늦추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에 동원되는 것이 의학이다. 의학 기술은 때론 환자를 회복시키지는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을 연장하는 기술로 사용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생명 연장의 수단으로 요양병원을 거친다. 현실은 치료보다는 연명 수준에 불과한 현대판 고려장 수준에 그치며 노인 학대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당사자나 가족들이 희망하지 않음에도 많은 시설을 거치고, 또 장기 요양보험이라는 공공의 비용과 개인의 비용을 쓰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부분에서도 의문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살은 사회적 금기이자 개인적 모욕으로 경원시 됐다. 그런데도 ‘죽을 권리’에 인류는 눈을 떴다.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죽을 권리’를 인정했다. 연명치료 중단, 안락사 등에 의한 사망과 관련한 사회적 고민과 공감대가 축적됐고, 이를 법률로 제도화해 왔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존엄성을 지키는 길을 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더디기는 하지만 ‘죽을 권리’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2009년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양지(陽地)로 나왔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자기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온 것이다. 2018년 2월 ‘김 할머니 사건’ 이후 이른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 법에 따라 보장됐다.  딱 여기까지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남용을 우려해 ‘임종기’에 한정하고 있다. 말기 환자가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조력 존엄사 법안’이 지난해 5월 국회 제출되기는 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말기 중에서도 통증 케이스는 아니지만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제도 밖의 ‘지속적 식물인간’은 이렇게 계속 붙잡아만 둘 것인가? 더구나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인 ‘안락사(安樂死)’는 한국에서 불법 지대에 남아 있다. 그러는 사이 죽기 위해서 비행기 표를 끊어서 외국까지 가서 객사해야 하는 이들이 나온다.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의 조력 사망 관련 기관 디그니타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안락사를 희망하는 한국인 회원이 110명을 넘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말기 암, 불치병 환자라고 추정된다. ‘안락사가 없으면 자살할 것 같다’는 사람도 있다. 생명력이 약동할 수 있음에도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안락사 전체를 논의하기에는 생명윤리나 문화 전반의 변화와 합의가 필요하기에 가능한 것부터 먼저 도입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본인과 보호자가 원할 경우, 연명장치 중단만 결정해도 진전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안락사 등 존엄사가 인위적으로 삶을 단축하려는 분위기 즉 인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고, 상속 등 경제적 이유로 오‧남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어두운 측면이 온전히 통제되면서 물샐틈없는 검증 절차가 수반된다는 믿음이 사회에 뿌리내려야 실행할 수 있는 제도일지 모른다.  획일성에 기초한 기존의 제도적 관행을 탈피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 치료제가 없는 경우, 의료진이 인정할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는 경우와 같이 여러 가지 조건을 부여한다면 남발이나 부작용 같은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실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건 떠나는 자보다는 남은 자 중심의 고려(考慮)다. 한국의 어르신들은 마지막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자 한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행한 노인실태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을 좋은 죽음’이라 답한 이가 89.0%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는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이에 대한 답이 준비되었는지 묻고 싶다. 사회적 논의 방법으로는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을 통해 논의 촉발(43%) ▲각계 인사를 포함해 조력 존엄사 공론화위원회 구성(25%) ▲국회 및 정당 차원에서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고 입법 추진(22%) 등이 주로 거론됐다.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여야 정치인이 안락사에 대한 해법을 두고 진행하는 싸움은 국민들이 의미 있게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회피하다 객사, 고독사, 극심한 고통을 모두 겪은 후 병사 등을 얻는 것보다 소위 호상으로 인생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희망한다.